전편에서 2017년 학부 시절 쓴 SNS 가면 논문이 임포스터 신드롬의 임상 구조와 일치했다는 걸 적었다. 그 글이 나간 뒤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지금 AI 시대를 본다면 그 다음 예측은 뭐가 될까.

먼저 명확히 해둘 게 있다. 나는 SNS를 깊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017년 논문도 사용자의 자기 고백이 아니라 관찰자 입장의 구조 분석이었다. 그래서 지금 AI 시대를 보는 시각도 동일하다 — 안에서 휘말리는 시점이 아니라, 바깥에서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본다.

그 시각에서 보면, 2025~2026년 AI 담론의 핵심 가설 하나가 곧 깨질 거라고 본다.


깨질 가설 — “AI로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된다”

2023년 ChatGPT 출시 이후 실리콘밸리와 국내 AI 담론을 관통한 한 문장이 있다. “진입장벽이 사라져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노션 AI, 캔바 AI, 미드저니, GPT, Sora, Suno — 모든 도구가 같은 약속을 한다. 코드를 못 짜도 앱을 만들고, 그림을 못 그려도 일러스트를 뽑고, 영상을 못 만들어도 유튜브 쇼츠를 찍는다.

이 서사가 맞다면, 콘텐츠 생산자 비율은 폭발적으로 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OpenAI가 2025년 9월 발표한 “How people are using ChatGPT” 보고서를 보자. 5억 명 월간 사용자의 대화를 분류한 결과:

사용 유형비율설명
Asking (질문·자문)49%정보 요청, 의사결정 보조
Doing (작업 수행)40%글 작성, 계획, 코딩 등 실무
Expressing (자기 표현·창작)11%개인적 성찰, 탐색, 놀이

핵심 숫자는 **11%**다. 다섯 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비율만 ChatGPT를 자기 표현·창작 도구로 쓴다. 나머지 89%는 검색·자문·작업 보조용. 즉 AI 시대에도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소비자·요청자로 남는다. 도구가 손에 쥐어졌다고 행위가 바뀌지 않는다.

이건 새로운 패턴이 아니라 인터넷 시대 내내 반복된 법칙의 연장이다.


90-9-1 법칙 — 30년간 안 깨진 인간 행동의 상수

Jakob Nielsen이 2006년에 정식화한 “90-9-1 참여 불평등(Participation Inequality)” 법칙이 있다. 원래 개념은 1990년대 초 벨 통신연구소의 Will Hill이 발견한 것.

법칙은 간단하다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90%는 lurker(읽기만 함), 9%는 가끔 기여, 1%가 대부분의 콘텐츠를 만든다. 이게 Zipf 곡선을 따른다.

플랫폼별로 보면 비율이 더 극단으로 간다:

플랫폼Lurker가끔 기여적극 창작
일반 온라인 커뮤니티90%9%1%
블로그95%5%0.1%
Wikipedia99.8%0.2%0.003%
자선 기금 모금 SNS99.3%0.7%~0%
TikTok Live (2026 연구)90%9%1%

가장 인상적인 건 마지막 행. 2026년 2월 발표된 “Platform Capitalism and the Paradox of TikTok Live” 연구가 TikTok 데이터로도 정확히 같은 90-9-1 분포를 확인했다. 20년 전 Nielsen이 본 분포가 짧은 동영상 시대에도 그대로 작동한다.

도구가 바뀌어도, 인터페이스가 개선되어도, 진입 장벽이 낮아져도, 비율은 안 움직인다. 왜냐하면 이건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동기 분포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들고 싶은 사람은 어떤 도구든 쥐어주면 만들고,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은 가장 쉬운 도구를 줘도 안 만든다.

이 법칙이 AI 시대에 깨질 거라는 가설은 — 데이터로 보면 — 아직 어떤 증거도 없다. 오히려 ChatGPT의 11% Expressing 비율이 90-9-1과 거의 정확히 같은 구조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면 AI는 무엇을 바꾸는가 — “만드는 사람 안에서의 격차”

여기서 진짜로 일어나는 변화를 봐야 한다. 만드는 사람의 는 안 늘어난다. 대신 만드는 사람과 안 만드는 사람 사이의 생산성 격차가 폭발한다.

이전 시대에는 1명의 창작자가 1년에 책 한 권을 썼다. 지금은 1명이 30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영한다. 코드 자동완성, AI 코드 리뷰, 자동 문서화, AI 디자인 시안, AI 영상 편집이 다 합쳐지면서 기존 창작자 1명의 처리량이 10배가 된다.

세계은행이 2025년 발표한 “Who on Earth Is Using Generative AI” 보고서가 이 패턴을 거시적으로 확인한다:

  • 고소득국 인터넷 사용자의 **24%**가 ChatGPT 사용
  • 상위 중소득국 5.8%, 하위 중소득국 4.7%, 저소득국 0.7%
  • 회귀분석 결과 GDP per capita가 AI 도입의 가장 강한 예측 변수

세계적 차원에서도 AI는 격차를 좁히는 게 아니라 벌리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보고서 표현 그대로 — “deepening global inequality.”

도구 평등화가 결과 평등화가 아니라는 것. 더 정확히는, 도구 평등화가 일어나는 순간 결과 격차는 더 벌어진다. 도구를 잘 쓰는 사람만 그 도구의 효과를 다 챙기기 때문이다.

이건 SNS 시대에도 같았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같은 도구를 줬을 때, 1%의 인플루언서가 90%의 소비자를 거느렸다. 도구가 같았다고 결과가 같지 않았다. AI 시대도 같은 구조의 한 사이클이다.


SNS 가면과 AI 가면의 결정적 차이

전편에서 본 2017년 논문의 핵심 통찰은 — SNS 시대에는 가면 생산이 사회적으로 강제됐다. 피드를 만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채용 담당자가 SNS를 본다, 친구가 인스타로 안부를 묻는다, 학교 동아리가 페이스북으로 소통한다. 안 만들면 손해. 그래서 가면을 만들기 싫어도 만들어야 했다.

AI 시대는 다르다. AI는 가면 생산을 강제하지 않는다. AI 도구는 손에 쥐어졌지만, 그걸 가면 생산에 쓸지 검색에 쓸지 자문에 쓸지는 사용자의 선택이다. OpenAI 데이터의 49% Asking이 그 증거다. 사람들 대부분은 AI를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는 도구로 쓴다.

이 차이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이렇게 갈라진다:

소비자 트랙 (90%) — AI를 검색·자문·작업 도구로 사용. 자기 콘텐츠는 만들지 않거나 만들어도 폐쇄적 맥락(개인 노트, 업무 메모)에서만 소비. SNS 시대와 비교해 부담은 줄고 효율은 오른다. 자기 가면을 강제로 만들 필요가 사라진 만큼 정체성 피로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창작자 트랙 (10% 미만) — AI를 가면 생산 인프라로 사용. 멀티 페르소나 운영, 자동화된 자기 표현, 캐릭터 IP 구축. 생산성은 10배가 되고 정체성 부담도 10배가 된다. 자신이 만든 가면이 너무 많아져서 어느 게 진짜인지 잊을 가능성이 SNS 시대보다 오히려 더 크다.

AI 시대 임포스터 신드롬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더 깊게 온다. 이청준 〈가면의 꿈〉의 명식이 1명에서 수억 명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수백만 명의 명식이 더 정교한 가면을 더 빠르게 만들면서 더 깊게 침몰한다.


새로운 임상 양상 — “안 만드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SNS 시대 임포스터 신드롬은 “가면을 안 만들면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발생했다. 들킬까 두려워하면서도 가면을 유지해야 했다. 양가성과 강박의 임상.

AI 시대에는 새로운 임상 변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가면을 만들 도구가 있는데 안 만드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이건 SNS 시대에 없던 새 변종이다.

생각해보자. 친구가 1인 미디어를 시작했다, 동료가 GPT로 부업을 한다, 이웃이 AI로 그림책을 출판했다. 도구는 같이 손에 있다. 그런데 나는 안 만든다. 이때 발생하는 감정은 “내가 게으른가” “나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안 만드는 게 시대에 뒤처지는 건가” 같은 자기 비난의 양식이다.

이건 임포스터 신드롬의 거울상이다. 임포스터는 만들고도 내 것이 아니다라고 느낀다. 새 변종은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들기에 내가 모자라다고 느낀다. 양쪽 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인격 구조의 두 발현이다.

Winnicott 용어로 보면 — 두 경우 모두 거짓 자기가 외부의 기대(이제는 AI 도구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기대)에 순응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도구만 바뀌었지 구조는 그대로.


그래서 다음 7년의 예측

2017년에서 2024년 사이, SNS 시대 임포스터 임상 데이터가 축적됐다. 2026년에서 2033년 사이, AI 시대의 임상 데이터가 비슷한 시차를 두고 축적될 거라고 본다. 그때 검증될 가설들:

가설 1: AI 도구 사용자의 90-9-1 분포는 안 깨진다. ChatGPT 사용자의 자기 표현·창작 사용 비율은 2033년에도 15% 이하에 머문다. (지금 11%)

가설 2: 창작자 트랙의 정체성 분열·번아웃 임상 보고가 SNS 시대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다중 페르소나 피로(multi-persona fatigue)” 같은 새 용어가 임상 문헌에 등장한다.

가설 3: 소비자 트랙의 임상 양상은 *“안 만드는 죄책감”*이 우울·불안의 새로운 예측 변수로 등록된다. 이건 SNS 시대 FOMO(Fear of Missing Out)의 진화형이다. “Fear of Missing Out from Making” 정도 되겠다.

가설 4: AI 도구가 보편화될수록, *“AI 안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새로운 사회적 마커가 된다. 그게 자랑이 될 수도 있고 낙인이 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정체성 표식 기능을 한다.

가설 5: 90-9-1 법칙이 안 깨진다는 게 확인되면, AI 산업의 마케팅 서사가 *“누구나 만들 수 있다”*에서 *“잘 만드는 사람을 더 잘 만들게 한다”*로 전환된다. 이미 일부 enterprise AI 마케팅은 이 톤으로 가고 있다.

가설 1만이라도 맞으면, 2025~2026년 AI 담론의 절반은 잘못된 가정 위에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도구 평등화로 행위 평등화를 기대하는 모든 전제 — 교육 정책, 노동 정책, 크리에이터 경제 정책 — 가 재설계되어야 한다.


관찰자 시점의 가치

마지막으로 한 가지 — 왜 깊이 안 쓰는 사람의 관찰이 의미를 갖는가.

깊이 빠진 사람의 시각은 안에서 본 디테일이 풍부하지만, 구조를 보는 데는 불리하다. 안에서 보면 이 가면과 저 가면의 차이가 크게 보이고, 더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구조 자체를 의심하는 데까지 시야가 안 닿는다.

밖에서 본 사람은 가면 하나하나의 디테일은 모르지만, 그게 다 같은 구조의 변형이라는 걸 본다. SNS도 AI도 다 같은 참여 불평등 곡선의 한 시점이라는 것. 도구만 바뀐다는 것.

이 두 시각이 다 필요한데, AI 담론에서는 안에서 본 시각이 압도적으로 많고 밖에서 본 시각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다”*라는 서사가 반복해서 나오고, 7년 뒤에 *“역시 안 달랐다”*라는 후회가 반복된다.

2017년에 SNS 가면 무한 생산을 본 시각이 맞았다면, 2026년에 AI 가면이 동일한 90-9-1 구조 위에서 단지 정교해질 뿐이라고 보는 시각도 비슷한 확률로 맞을 거라고 본다. 검증은 7년 뒤에 한다.

그때 다시 이 글을 인용하면서 시리즈 3편을 쓸 수 있을지가 진짜 테스트일 거다.


참고 자료

  • Nielsen, J. (2006). The 90-9-1 Rule for Participation Inequality in Social Media and Online Communities. Nielsen Norman Group.
  • World Bank (2025). Who on Earth Is Using Generative AI? Global Trends and Shifts.
  • OpenAI (2025). How people are using ChatGPT.
  • Pilati et al. (2026). Platform Capitalism and the Paradox of TikTok Live Streaming. American Journal of Sustainable Cities and Society.
  • Microsoft & LinkedIn (2024). Work Trend Index Annual Report.
  • 전편: 8년 전 학부 논문이 임포스터 신드롬이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